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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열두 고개(열한 고개)

승란 2015. 1. 15. 10:05

 악몽의 36시간

 

란초/곽승란

 

엄마의 피를 말렸던 36시간.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의 그 사건.
글로 남기고 싶진 않았지만
이렇게 손을 놀리는 이유는
세상에는 따스한 정이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 하고 싶어서다.

 

엄마의 병환은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시고
무려 수백 집을 다니시며 시주를 해서
조상을 달래 드리고서야 쾌차를 하셨다.
그 후로 엄마는
아버지의 종교를 함께 하지 않으시고
어린 우리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시며
아버지와 함께 계속 다니라 하셨다.
동학 천도교는 어른이나 아이나 똑 같은 우대를 한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똑같이 맞절을 하고
자리에 앉는 풍습이 있는 종교다.
그래서 그런 예의범절과 좋은 배울 것이
많으시다 생각하셨다.

 

그러다,
엄마가 다시 일을 하실 무렵
누나의 사춘기가 시작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침이면 학교를 가는데
누나는 허구한 날 집에서 엄마를 도와
아기 보고 빨래하고 청소하다보니 이런 게 싫었다.
그리고 한번 쯤 집을 나가 돈을 벌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는 짓이란 걸 알겠지만
그때는 그것도 모르고 이웃에 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와 어울려
편지 한 장 써 놓고 집을 나가고 만다.
‘사랑하는 엄마,
저 00이와 함께 돈 벌어가지고 올게요,
너무 걱정 하시지 마세요,
편지 할 게요, 죄송해요.‘
그렇게 몇 글자 써 놓고 누나는 집을 나갔다.
 
그렇게 집을 나선 두 명이 간 곳은
결국 악의 소굴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청소년들 아닌가!
지금도 그런 청소년들이 많지만...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전엔 신문에 조그만 광고가 많이 실렸는데
그 광고보고 전화해서 찾아 간 곳이 바로 그곳!
둘은 들어간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말로만 듣던 건달 같은 아저씨들이
우리를 무서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곁에 감시인으로 서 있다가
따라 오라고 하더니 승용차에 태웠다.
"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 “
" 공장으로 가는 거야. “
" 공장이 시골에 있나요? “
누나가 눈치를 채고는
"싫어요, 우린 시골로 안갈 거예요,
집에 보내주세요, 네!  아저씨!
우리 그냥 집에 갈래요,
" 시끄러! 잠자코 있지 못해? “
하면서 주먹으로 때리려고 하니 무서워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 지금 쯤 울고 계실 텐데 식사도 못하고 계실 텐데,
나 때문에 또 마음고생 하실 텐데...‘ 하고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도와주세요,’ 기도를 했다.
그러는 동안 도착한 한 버스정류장.
거기서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겨져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반복을 하던
정류장 두 곳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포천, 철원, 지금이야 차도 많고 집도 많고 하지만
그때는 드문드문 있는 초가집.
그리고 조그만 구멍가게 몇몇일 뿐.
눈치를 채고 도망 가려해도 못 한다.
먹으라면 먹고 타라면 타고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 가고
둘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는 동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길 먼저 빠져나가는 사람이
집에 가서 알리는 걸로 약속을 했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은
별 밖에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
전기도 없어 컴컴한 어두운 술집으로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 아저씨들은
주인 같은 여자한테 무어라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인은 벌벌 떨고 있는 둘에게 오라고 하더니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밥 먹고 이야기 하자며
된장찌개와 밥을 주었다.
그 와중에 밥이 먹히진 않지만 배도 고프고 안 먹으면
달아날 힘도 없을 것 같아서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 아주머니는 밥상을 치우고 우리에게
너희 둘은 내가 샀으니 집에 가려면 빚을 갚고 가고
못 갚으면 여기서 일을 해야 한단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둘에겐 돈도 주지도 않고 샀단다.
어떻게 남의 몸을 사고팔고 한단 말인가!
흐르는 눈물 감추지 못하고 누나는 울면서
“아줌마 엄마가 보고 싶어요, 우리 좀 보내주세요,”
“가고 싶으면 빚 갚고 가라,”

그렇게 겁을 준 주인은
우리를 따로따로 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세상물정 모르면서 엄마 품에서 나와
악의 소굴로 들어 왔으니 이 얼마나 하늘이 무너질 일인가.
‘지금 쯤 엄마는 울고 계실 텐데 어떻게 하지?
여길 어떻게 해서라도 빠져 나가야 할 텐데.... ‘
방 한 쪽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도 보고 싶고 식구들이 보고 싶어
후회가 막심하지만 소용없는 일,
이곳이 어딜까?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오다가 검문을 수차례 하면서 왔었고
시계는 없어 시간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살짝 잠이 들었는데
머릿속에 스치는 엄마의 목소리
“딸아,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딸아! 정신 차려라! 딸아, 일어나 어서! “
“엄마, 엄마, 미안해요, 엄마, ”
막 엄마를 부르고 있는데 사르르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 왔는데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 아니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아저씨였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있는
나를 보던 군인 아저씨는 나보다 더 놀랜다.
멍하니 쳐다보더니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얘야, 겁내지 말고 이리 와 보렴,” 하고 손을 내밀지만
여전히 겁먹고 있는 아이를 애처롭게 쳐다보더니 다시 말씀 하신다.
“내 너를 해코지 할 생각이 없으니 이리 와서 이야기 좀 해 보자.”
그 소리에 누나는
“아저씨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저씨
저 좀 집에 보내주세요, 아저씨,
엄마가 보고 싶어요, 네, 아저씨. “ 하며
울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 이리와,
거긴 춥다 어서 이리 오너라. “ 하시며 손을 잡았다.
호롱불빛에 살짝 본 군인아저씨는 나이가 조금 들어 보였고
지금 생각하니 꽤 높은 군인 이었다.

좁은 방안 호롱불 밑에서 군인 아저씨가
나도 집에 가면 학교 다니는 딸이 있다고 하시며
어쩌다가 여기 까지 왔냐며 물었다.
그 말에 더 흐느끼며 누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친구하고 함께 왔는데 옆방에 있다고 했더니
같이는 못 데려가니 집에 가거든
어른들에게 말씀드리라고 하시며
“지금부터 아저씨 말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네, 아저씨.”
“아저씨가 시계를 주고 갈 테니 새벽 5시에 밖으로 나와라.
소리 내지 말고 알았지? 들키면 집에 못 간다,“
“ 네, 아저씨.”


누나는 참으로 운이 좋아 좋은 군인 아저씨를 만났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렇듯 좋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글로라도 그 분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옮겨본다,
그 악몽을 다시 생각하며 바보 같았던 자신 때문에
애를 태우셨던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다음 날 새벽까지
잠이 들면 집에 못 간다는 불안에
뜬 눈으로 있다가 드디어 5시가 되었다.
아직 많이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도 어려운데
때 마침 자동차 불빛이 보이더니
군용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얘야. 어서 타거라, ” 하고 문을 열어 주는 군인 아저씨.
누나에겐 생명의 은인인 고마운 아저씨.
그렇게 누나를 어느 검문소에 태워다 주시고
버스가 오면 태워주라고 당부하시면서
주소를 주시고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누나에게
또 다른 검문소 통과증도 주시고 버스 차비까지 주시며
“얘야. 다시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돼, 알았지?”
“아저씨.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고마운 아저씨는 가셨다.
가시자마자 문득 그 고마운 아저씨의
이름도 성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때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성함이라도 물어 볼 걸!
그리고는 버스가 올 때 까지 헌병 초소에 기다리는데
불안해서 조바심을 내니 헌병 아저씨가 이젠 괜찮으니
걱정 말고 앉아 있으라고 안심을 시키는데 여전히 불안한 누나.

 

버스를 탔다.
헌병 아저씨가 운전사 아저씨에게
귀에 대고 뭐라고 하니까 알겠다고 고개를 끄떡이며
버스는 달리기 시작 했다.
꼭 그 사람들이 뒤따라오는 것 같고
언제 어디서 그 나쁜 아저씨들이 튀어 나올 것 같아
한시도 눈을 부치지 못하고 가슴 조였던 시간들.
운전석 뒤에 앉아 안절부절 하는 누나를
앞 거울로 보았는지 기사 아저씨가
“ 아가야, 불안해 하지마라,
나쁜 사람들 오면 순경아저씨 불러주마.
괜찮으니 한 숨 자거라,“ 하셨다.

버스를 갈아 탈 때마다 기사 아저씨들 보호로
그 악의 소굴을 벗어나 엄마 품으로 돌아온 누나.
잠도 밥도 못 드신 엄마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딸아, 고맙다, 이렇게 다시 와 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네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
“엄마. 아녜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 그리고 친구 찾으러 가야 해요.“ 
그렇게 잠 한숨 못잔 누나의 악몽의 36시간은 끝이 났다.(열두 고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