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 여행

인생 열두 고개(다섯 고개)

승란 2014. 11. 11. 00:00

여인이기를 포기한 모성애

                    란초/곽승란

 

수모와 설움을 참으며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여자아이가 아홉 살이 되었다.

재판을 하며 너무 늦게 출생신고를

한 탓에 나이가 줄다보니

취학통지서가 그때서야 나왔다.

입학 하는 날.

엄마는 일을 가셔야 했기에

9살 꼬맹이 혼자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누나가 학교를 가면

혼자 남는 동생은 당분간

엄마가 직장에 데리고 다녀야 했고

그래서 눈치 보며 일해야 했던 엄마.

조금만 더 참자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시면서 살아야 했던 날들.

 

그렇게 많은 날들이 가고

2학년으로 오르는 과정에

학교가 멀고 또 학생 수가 많아지니

새로운 신길 국민학교 (지금 초등학교)

지어 가까운 학생은 작은 학교로 보내졌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은 신길동

당원공장(지금의 뉴슈가) 담 밑이었다.

그집에 살면서 나는

학교가 좋은 건지 선생님이 좋은 건지

학교 다니기를 무척 좋아 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2.3학년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 않던

아버지가 당원공장 사장인 친구,

아버지가 치과를 하던 친구는

50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 또 시간이 지나

동생도 학교에 입학하고

남매는 다시 손잡고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친구 병원에서 나와

집짓는 현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힘은 들어도 돈벌이가 조금 된듯하다.

하지만 밤이면 끙끙 앓으셨다.

그러면서도 아침이면

아이들 먹을 밥만 해 놓고 일을 나가신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엄마는 짐을 꾸리시고

남매를 앞장 세워 버스를 타고

어느 곳에 내려 산으로 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관악산이었던 같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산속 조그만 암자에 도착해

사정얘기를 해서 밥을 얻어먹고

그 암자 너머로 가서

돌을 주워 벽을 세우고

움막을 지으셨다.

그러고선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한다 했는데

그 다음날 경찰이 우리를 포위했다.

간첩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엄마는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고

그 후로 아마 보름정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일하는 건설현장 십장(소장)아저씨가

엄마에게 청혼을 하신거였다.

그에 엄마는 잠시 피하신건데

결국 집과 직장까지 옮기기까지 하셨다.

그곳은 학교와 거리가 멀어

1시간을 넘게 걸어야 했다.

관악산이 올려다 보이는 등하교 길에

달구지도 얻어 타며 다닌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멀리 도망 아닌 도망을 했지만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수소문을 하셨는지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우리 남매에게 잘 해주시고 예뻐해 주셨다.

아빠의 사랑이 그리운 남매,

결국 남매는 엄마에게 조른다.

엄마. 그 아저씨 우리 아빠 해요. ~”

하지만 엄마는 싫다하신다.

그분은 함경도가 고향이시고 혼자 사시는데

북쪽에 식구가 있고 너무 맘이 착하신 분이었다.

식구들을 잊지 못해 혼자 지내고 계시다가

너무 외로워 우리 엄마를 택하셨는데

기술은 좋지만 돈만 생기면

밑에 있는 사람 다 도와주고 하다 보니

재산도 없고 마음만 착하다고,

우리 남매 고생 시킬 분이라 싫다 하신거였다.

어린 나이에 인품 자상함 등을

모두 갖추신 저 아저씨를 왜 싫어하실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의 인생, 우리 남매의 삶은

또 달라졌으리라.

팔자라고 해야 하나?

우리 세 식구의 운명이라 해야 하나?

(여섯 고개에서)

 

(기억을 더듬어

50여년이 흐른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가물거리는 옛 이야기에

때론 마음이 아파옵니다.

엄니가 그립기도 하구요.

그 당시 서울에는 전차가 다녔고

버스도 있었지만

하루 몇 대 정도이었지요.)

>

'나의 추억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0) 2014.11.14
하얀 기다림  (0) 2014.11.12
마음을 먹는 인연  (0) 2014.11.10
사십 계단의 추억  (0) 2014.11.06
인생 열두 고개(네 고개)  (0) 201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