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버린 모성애
란초/곽승란
절에서 나오게 된 세 식구는
그나마 살림살이가 있는
자그마한 단칸방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끼니는
술찌끼와 두부찌끼 즉 비지라고 하는
그것으로 거의 배를 채웠으나
남매는 엄마 얼굴 쳐다보며,
엄마랑 함께 지내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며칠을 두고 생각하신 엄마는
남매를 보고 “집에서 놀아라.
엄마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
싸우지 말고 기다려. 알겠지?“
하고 나가시더니 한참 후에
밀가루 한포를 가지고 오셨다.
세 식구는 그 밀가루로
칼국수를 만들어 맛있게 먹고 나서
엄마는 그 밀가루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때 당시 먼 친척이신 오빠가
동사무소 근무를 하셨는데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달마다 조금씩 밀가루 배급을
받게끔 해 주셨다고 한다.
그런 후 엄마는 다시 남매를 깔끔하게
옷을 입히시고는 함께 나가자고 하신다.
“엄마, 우리 어디가요?”
“아빠 친구 분에게 간다.
가거든 인사 잘 해야 해. “
“네.”
아빠 친구 분은 당시
영등포 시장 맞은편 연흥극장 뒤에서
자그마한 병원을 하셨는데
장례를 치르고 나서 힘들 때 찾아오라
했었으나 엄마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찾아가지 못하시다가
결국 우리 두 남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가게 되었지만
그 발걸음은 너무 무거워서
떨어지지 않으셨으리라!
지금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그때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니
가슴이 미어져 온다.
병원에 들어서니 아빠 친구는
“에구, 이 불쌍한 남매를 버리고 간 친구야,
보이나 보여? 쯧쯧... " 하시며
우리 남매를 보시더니 붙잡고 우신다.
그리고 안채로 안내해 가정부 아줌마에게
밥상을 차려 달라고 하시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셨다가
부인하고 함께 나오시더니
환자가 있어 다시 나가시고
우리는 밥을 먹게 되었다.
맛있는 반찬에 하얀 쌀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빠 친구 부인과 엄마는
할 이야기가 있다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조금 지나자 나오시면서
아빠 친구 부인이
“처음엔 서먹하겠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질 거예요.
내일부터 오도록 해요.“
그에 엄마가 “네. 내일 오겠습니다.”
하시고는 남매를 향해
“집에 가자.” 하시며 남매 손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결국 엄마는 자존심을 버리고
아빠 친구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로 하고 왔지만 얼마나 속 상하셨을까?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때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니 과연 나 같으면 자존심을
버리고 남편 친구 부인 밑에서
허드렛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수없이 “어머니. 어머니...”
수없이 어머니를 불러본다.
불쌍하신 어머니
보고 싶은 엄마 그립습니다.
(다섯 고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