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 여행

인생 열두 고개( 일곱 고개)

승란 2014. 11. 27. 18:53

엄마의 아픈 가슴이

 

란초/곽승란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시주하러 들어오시더니
시주할 생각은 안하시고
"쯔쯔.."혀를 차신다.
"스님. 왜 그러시는지요?"
"네. 보살님. 이집에 크나큰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네. 보살님. 그럼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시렵니까?"
스님은 말씀을 하시고 나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는지
불안한 모습을 하고 떠나셨다.

 

 

그때 당시 남매 친 아버지는
봉천동 공동묘지에

 

안치 되어있었는데
그 지역이 개발된다고

 

묘지 이장을 하라 한다.
처음으로 엄마는 남매를 데리고
친아버지에게 인사하러 갔다.
"여기가 너희 아버지 산소야.
어서 술 한 잔 따르고 절 하렴."
남매는 어리둥절해 하며

 

절을 하고난 뒤
굴삭기가 땅을 파고
아버지 유해가 담긴

 

항아리가 꺼내졌고
그렇게 아버지와 짧은 만남뒤에

 

또 다른 작별을 하고,
어머니는 갈 곳이 있다고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하시곤
부랴부랴 어디론가

 

버스를 타고 가셨다가
해가 진 다음에 기진맥진

 

지쳐서 들어오셨다.

 

 

그런 뒤 며칠이 지나서 인가
뜬금없이 누나가 만화책 보러가자고
동생을 데리고 함께 나가면서
둘이 장난을 치다

 

동생이 도망을 갔는데,
아뿔싸!!
도로에서 내려오는

 

버스에 부딪히고 말았다.
동생은 튕겨져 땅바닥에 떨어졌고
버스는 끼이익 소리와 함께

 

급정거를 했다.
누나는 놀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울며 집으로 달려간다.
"엄마. 엄마 엄마!!!
차. 차. 엄마 차!!!"
말을 잇지 못하고 사색되어 있는

 

딸아이를 보고
엄마는 신발도

 

신지 못하시고 달린다.
도로에 떨어져 피가 범벅이 된

 

아이를 보듬고
운전기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벌벌 떨며 서 있다가 엄마를 보고는 달린다.
가까이 있는 병원으로.

 

머리가 깨졌어도 다행이
뇌에 손상은 없다고 의사의 소리를 들은 엄마
두 손을 합장하고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시며 수없이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시고
그 제서야 사색이 되어 있는 기사를 보았다.
"많이 놀랐지요?" 하면서

 

기사를 진정 시키고 나니
버스 운전기사는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한다.
자기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한번만 봐 달라고 한다.
엄마는 걱정마라 내 아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니 아이 다 나을 때 까지 치료나 해달라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았더니 운전기사는
감사하다 절까지 하였다.

 

 

그럭저럭 동생이 회복이 되어 집으로 왔는데
갑자기 엄마가 배를 움켜쥐고 많이 아파 하셨다.
급히 병원으로 가셨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뱃속의 아기가 잘 못 되었단다.
우리 동생이 없어 졌단다.
그렇게 좋아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실망이 크실 텐데도,
남한에서의 처음으로 생긴 자식이었는데도,
내색도 한번 못 내시고
엄마만 위로 하신다.
"그 대신 큰 자식이 살았잖아요.
아이는 또 가지면 되니까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그런 아버지께 한없이 미안한 엄마.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스님께서 아들이 죽을 운명이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면 살 수도 있으니
한 번 해 보라는 말씀의 내용은 이렇다.
친아버지의 유해를 동생 속옷에다
싸서 돌을 매달아 한강에 던져서
그것이 떠오르면 살 것이고
안 떠오르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던지고 몇 시간을 기다리니

 

떠올랐다고 하셨다.
하지만 집안에 또 다른 슬픔이 있을 것이니
각오는 하고 있으라고 하셨단다.
참으로 용한 스님이었다.

 

 

그렇게 모진 아픔을 다시 겪으신 엄마
한동안 많이 아프셨다.
마음도 몸도 한 많은 삶을 탄식도 하면서
많이 우셨다.
덩달아 우리 남매와 아버지도

 

세상 구경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자식과 동생을
잃은 슬픔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엄마는 꽤 오래 누워 계시다가
수척해 지신 몸을 일으켜
다시 일을 나가시기 시작했지만
몹시 힘이 드신 모양이다.
말씀도 예전처럼 안하시고

 

잘 웃지도 않으셨다.
집안은 싸늘한 공기로

 

화목함을 찾아 볼 수 없어
아버지와 남매는

 

엄마 눈치만 보며 지내야 했다.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빨리 커서 돈 많이 벌어

 

엄마 다 드릴 게요.
그러니까 엄마 그만 웃으세요. 네..."
엄마는 싱긋이 웃으시며 "미안하구나.
조금만 참아 주면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 거야."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딸아이가 5학년이
되던 해인가 엄마는 회복하시어
예전처럼 집안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또 다시 동생을 가지셨다.
예전에 한 번 실수로 아이를 잃어버리신 것이
무서웠던지 말씀을 하지 않고 계셨는데,
갑자기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헐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의 집 셋방에 사는 우리가 무슨 수로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있으려는지
아버지도 모아 놓으신 재산도 없는데
진퇴양난이 된 우리식구의 미래는?

 

(여덟 고개에서)

 

 

*여기에 스님 말씀은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스님의 말씀을 들은 엄마는 걱정을 많이 하셨고

 

동생은 내리막길 교통사고에서 기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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